노년의 삶

산업화, 현대화, 도시화가 가속하면서 경로사상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경로사상이 사라진 것은 마을의 실종, 공동체의 해체와 연관되어 있다.
마을공동체의 대안은 무엇일까? 느슨한 관계이다. 개인의 사생활은 침범하지 않으면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느슨한 관계는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찰이 또 다른 대안일 수 있다. 절에 나와 참배도 하고 밥도 먹고 법우들과 차도 마시고 노닥거리는 것이 느슨한 관계에 다름 아니다. 불자라면, 여기에 대해 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수행을 해야 한다. 매 순간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번뇌가 사라지는 부처님의 경지에 다가가기 위해 수행하며 사는 것이 바로 노년의 삶이며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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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경로(敬老)

오늘은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법문을 해볼까 합니다. 며칠 전 신문에 70대의 할머니와 50대 남자가 지하철에서 다툼이 있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50대 남자가 교통약자석에 앉아서 가고 있는데 70대의 나이 드신 할머니가 ‘어디 70살도 안 된 게 어디 경로석에 앉아 있느냐’고 호령을 했습니다. 그러자 50대 양반도 ‘아니 내가 교통약자라서,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앉아 있는데 뭐가 잘못됐냐?’ 하면서 싸우고, 결국 경찰이 출동해서 합의를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속 기사로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교통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배려가 부족해서라고 진단했습니다. 여기에서 교통약자는 노령자, 어린이, 임산부,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 등 서서 가기 불편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교통약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한데다 사회적인 배려가 낮아서 이런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교통약자들을 위한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된다고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70대 할머니가 화가 난 것은 교통약자에 대한 인식 부족이 아닙니다. ‘왜 경로석에 50대가 앉아 있냐?’라는 것은 ‘젊은 게 감히 나이든 사람을 위해 있는 자리에 앉다니’ 하는 겁니다. 할머니는 경로사상이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경로석과 교통약자석은 다릅니다. 경로석은 말 그대로 경로(敬老), 노인을 공경하는 자리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나이 드신 분이 타면 경로석이 아니더라도 비켜줘야 합니다. 안 하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다 받아야 됐습니다. 이렇게 자동적으로 노인을 배려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리를 잘 안 비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전체 자리 중에서 몇 개 정도는 노인 분들 먼저 앉으시라고 지정을 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니까 제도적으로 강제한 건데, 경로석을 만들어 놔도 안 지키더라 이겁니다.

그뿐입니까? ‘경로석’이 아니라 ‘교통약자석’이라고 해서 노인뿐만 아니라 어린이, 임산부,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 등을 위한 자리로 바꾸었습니다. 경로석이 교통약자석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뀌게 된 과정을 가만히 보면 사회적으로 경로사상보다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의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어르신 입장에서는 원래 있는 자리를 뺏긴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경로사상의 실종, 마을의 실종

그렇다면 왜 경로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다시피 했을까요? 제가 볼 때는 마을이 없어지고 이웃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마을이 없어지다 보니까 일상적으로 어른을 공경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속의 강제가 없어진 겁니다. 마을이 있을 때에는 매일 보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속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겉으로는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지하철에서 보는 노인은 평생에 한 번 보고 또 볼지 안 볼지 모릅니다. 보고 또 볼 확률이 거의 없으니까 굳이 그 양반한테 공경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마을이 없어져서 매일 부딪히는 어른이 없으니까 ‘생판 모르는 노인한테 굳이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마을을 조금 유식한 말로 하면 지역공동체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공동체를 마을이라고 해요. 마을이 없어졌다는 말은 어떤 말이냐면 지역공동체가 없어지고 개인밖에 안 남는 겁니다. 그 전에는 대가족이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핵가족도 깨져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서울시 가구의 3분의 1입니다. 즉 지역공동체에서 개인 중심의 사회로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 증거 중에 하나로 경로석이 교통약자석으로 바뀐 것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이 변화에서 경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즉 20대, 30대, 40대, 50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지역공동체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가장 타격을 받는 사람은 노인이나 유아, 어린이들입니다. 예전에는 나이 드신 분들은 마을에서 알아서 어른 대접을 해주었는데, 요즘에는 노인복지관으로 출근하거나 문화센터로 가야 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는 분들은 심심하면 4박5일 교토 여행 갔다 오고 날이 추우면 태국 여행 갔다 오면 되는데 이도 저도 아닌 분들은 무엇을 합니까? 방콕 해야 합니다. 다리가 안 좋아서 돌아다니기 힘들고 돈도 없으면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게 되고 그러면 사람이 우울해지고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집니다.

아이들은 또 어떻습니까? 옛날에는 큰 애가 작은 애 봐주고 주변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봐주고 그렇게 마을에서 아이들을 알아서 다 키웠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안 합니다. 어린이집 보내고 유치원 보내고 학교에 들어가면 학원 보내고 방학 되면 무슨 캠프 무슨 캠프 다 보내야 합니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애들끼리 놀면서 했던 것들을 요즘에는 다 돈 줘가면서 보내야 합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마을이 없어지니까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곳에 보냅니다. 마을이 없어지면서 나이 드신 분들이나 아이들의 시간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마을이 없어진 곳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 상태를 방치를 하고 있어야 하느냐, 뭔가 노력을 해야 하느냐의 기로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마을이 없어졌으니까 마을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시골마다 행복 마을 만들기 캠페인 같은 걸 합니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있었던 일인데, 관광지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 한 번 동네 사람이 다니는 논 옆에 작은 바람개비 같은 걸 1미터 간격으로 세워놓았습니다. 지자체에서 하는 ‘행복마을 가꾸기’라는 사업의 지원을 받은 것이라 합니다. 어느 날 신도가 찾아와서 스님 절에서도 뭘 하나 기획해서 돈 좀 타 내라고 합니다. 행복 마을 가꾸기라는 게 이웃들끼리 아이도 같이 키우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잘 포장을 해서 우리가 돈을 좀 타올까? 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고 얽혀서 시설 투자하는 것으로 바뀌는 겁니다.

얼마 전 증심사에서 열린 수요법회에서 최근 문제가 되었던 금천구 아이 돌보미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 돌보미가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고, 이 CCTV를 부모가 찍어서 청와대에 청원을 올려 10만 명의 사람들이 동의를 한 사건입니다. 지역공동체가 없어져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시 같은 경우는 아파트밖에 없으니까 1층에다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육아 마을, 독서실, 공부방 같은 것을 설치하면 어떻겠냐고 하니까, 요즘 실제로 그렇게 한답니다. 하는데 사람들이 잘 안 간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이미 개인 중심으로 사는 데 적응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웃사촌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정책적으로 이런 마을을 새로 만들자 하고 억지로 시설만 만들어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느슨한 가족’ 모임, 우리나라의 ‘마을회관’

과연 방법이 없을까요? 찾아보니 일본 같은 경우는 ‘느슨한 가족’이라는 모임을 만든다고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는데, 거기서 특별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절이나 문화재 시설 같은 곳을 산책을 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은 침범하지 않으면서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느슨한 관계를 형성하자 라는 모임이 일본에는 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옛날에 제가 있던 절의 마을 주민들도 다 나이 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주민들이 봄, 여름, 가을에는 논에 나가서 일하느라 바쁘고 겨울에는 느지막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놀다가 같이 점심해 먹고 오후에는 텔레비전도 보고 화투도 치고 하다가 저녁 먹을 때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잠은 자기 집에서 자고 낮에는 마을회관에서 같이 지내는 겁니다. 동짓날 팥죽 공양도, 초파일 끝나고 과일 공양도 마을회관에 갖다 주면 알아서 거기서 먹고, 놀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고 노인들만 마을에 남아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결속력이 강해진 겁니다. 우리나라는 시골에서는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지역공동체를 정책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경로사상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한 번 깨진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나라에서 살린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얼마 전에 중국에서 경로법이라 하여 효도를 안 하면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만든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렇게 한다고 경로사상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밑에서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사찰, 느슨한 관계의 대안

다시 대안을 생각해봅시다. 우리들이 알아서 느슨한 관계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뭡니까? 절에 자주 나오는 겁니다. 절에 와서 꼭 법문 듣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뭔가를 하라는 게 아니고, 가끔씩 절에 와서 못 보던 다른 보살님들과 묵은 이야기들도 하고 같이 차도 마시고 노닥거리고 하다가 집에 가시라는 겁니다. 법회 간다는 핑계 대고 하루 놀다 가라는 거예요. 법문도 듣고 밥도 먹고 부처님한테 예불도 하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러면 마을회관이나 노인복지관하고 절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앞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강한 개인이 중심이 되어 느슨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노년의 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고요.

강한 개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체력적으로 강하다는 게 아닙니다. 체력적으로 강하고 싶다면 저한테 오지 말고 병원을 가거나 헬스클럽 가거나 요가학원을 가서 단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강한 개인이라고 하면 정신적으로 강함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강하다. 마음이 강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거꾸로 말해 정신적으로 약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쁠 때 기쁜 거에 취해서 계속 기쁘고 싶은 겁니다. 술을 계속 마신다거나, 유흥이나 접대에 취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바로 거기에 취해서 계속 기분이 좋고 싶은 겁니다. 또한 슬프고 힘들 때 슬픔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 합니다. 사람들마다 붙잡고 나 힘들어요, 나 슬퍼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화가 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조금만 화가 나도 소리를 버럭버럭 지릅니다. 자기의 화를 자기가 통제를 못 하는 겁니다. 자기의 감정, 희로애락, 이 거친 감정을 내가 컨트롤 못 하는 것이 바로 정신적으로 약하다는 말입니다.

노년의 삶,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혜

정신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그런 감정을 내가 다스릴 줄 안다는 겁니다. 불교는 다른 게 아닙니다. 내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불교입니다. 정신이 강하다는 말은 내 마음이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강하다는 말은 평소에 자기 건강을 잘 챙겨서 몸이 건강하다는 말하고 똑같습니다. 정신적으로 강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이 건강하기에 거친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설령 슬픈 일이 있더라도 금방 풀고, 화가 나더라도 10분 화 낼 것을 30초 내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건강함이 1분 1초도 그치지 않고 쭉 지속된다면 그게 바로 부처의 경지입니다. 매 순간 내 마음이 건강하고, 매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내 안의 번뇌가 사라지는 것. 그게 부처입니다.

여러분, 말로만 부처님처럼 살자고 하지 말고 실제로 내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마치 체력 단련을 위해서 매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몸이 건강해지듯이 마음도 평소에 꾸준히 수행하면 건강해집니다. 강한 개인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부처님 말씀에 따라서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열심히 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꾸준하게 부처님 말씀에 따라서 수행을 하셔야 합니다. 기도를 하든, 독경을 하든, 절을 하든 뭐든 좋습니다. 자기한테 맞는 수행을 꾸준히 해서 내 마음을 건강히 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내 주변에 느슨한 인간관계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게 좋습니다. 흔히 인간관계라고 하면 친밀한 관계만 생각하는데 실제로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느슨한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잃어버린 지역공동체, 마을, 이웃을 우리 주변에서 노력하여 찾아봅시다. 이 두 가지가 여러분들이 노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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