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살자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젊을 때는 내 앞에만 길이 막혀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생을 ‘나무’에 비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다소 고달픈 젊은 시절은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다. 뿌린 씨앗 중 어떤 것이 싹을 틔울 지는 모르지만 그중 하나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으면 주변의 동물과 곤충, 그리고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씨앗의 싹을 틔우는 것은 숱한 인연이다. 나의 의지와 우연이 만나 인연을 맺고 숙명이 된다. 내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앞서거나 뒷서가는 길에서 벗어나 나무처럼 살자. 나

#공동체, 의지, 인생, 인연

https://www.youtube.com/watch?v=je17mAes91k

차라리 나무가 되었으면?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내려진 지 4주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4주 정도를 아무것도 안하고 절에서 그냥 놀고 먹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할 일이 없습니다. 그냥 숨만 쉬고 있습니다. 약속, 회의, 모임, 봉사활동 모두 취소되어서 특별히 나갈 일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신기한 게 한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도 밥 세 끼 잘 먹고 따순 방에서 잘 자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쨌든 제가 승가라면 승가인 증심사에 기대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때는 길을 가다가 가로수를 보고 ‘차라리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하도 먹고 살기 힘드니까 차라리 나무처럼 한 군데 매여 있는 것이 것이 낫지 먹고 살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가정에서 생활을 하면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살 수는 있지만 제 젊은 날처럼 객지에 나와서 자취하는 경우에는 자기가 못 벌면 굶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길이 보이지 않던 시절

젊었을 때 저하고 지금의 저하고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앞에 말했듯이 지금의 나는 어찌 되었던 간에 뭔가에 기대서 살고 있습니다. 뭔가에 기대서 살고 있다는 말은 어디엔가 뿌리 내렸다는 말입니다. 당분간은 굳이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저한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고, 예를 들면 공부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그럴 겁니다. 

오늘 아침에 본 웹툰에서 공시생의 애환이 나오는 걸 봤습니다. 절에서도 공무원 시험 합격 발원 축원을 하지만 한번만에 덜컥 붙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몇 년 공부를 하다 보면 남들은 앞서가는데 자기는 제자리걸음하는 것 같고, 제자리걸음만 해도 괜찮은데 나 혼자만 막다른 길에 막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가자니 길이 막혀 있고, 돌아서 가자니 투자한 게 아깝고. 앞으로 가지도 못 하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답답한 심정. 그런 공시생들의 애환을 그린 걸 봤습니다.

우리 젊은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 젊은이들도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는 앞길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뿌리기를 하는데 씨앗에 눈이 달려서 ‘내가 저기에 뿌리를 내리면 잘 살겠다’ 하는 곳에만 골라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에는 눈이 없어요. 어떤 씨앗은 강물에 떨어지고 시멘트 떨어지고 아스팔트에 떨어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씨앗들 중그나마 재수 좋은 친구가 흙 있는 곳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한줌의 씨앗이 있다고 할 때, 그 씨앗 중 자리를 잡아서 싹을 띄울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젊음은 씨앗이다 

젊었을 때의 열정과 삶의 에너지. 이런 것들은 일종의 씨앗 같은 겁니다. 눈이 없기 때문에 열정과 에너지는 많지만 백퍼센트 자리를 잡고 뿌리 내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었을 때는 부딪히는 거고 깨지는 거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겁니다.

그 중 일부만이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긴 내렸는데 하필이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 내렸다거나, 아니면 하필 그때 비가 많이 와서 햇빛 구경을 못했다거나, 너무 척박한 자갈 땅에 뿌리를 내렸다거나 하면 제대로 크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역경을 뚫고 어찌저찌 줄기를 뻗어 올렸다 해도 그 다음에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도록 이파리를 피우기까지가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그 단계까지만 가면 그 다음부터는 그나마 어리지만 한 그루의 나무로써 자기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딘가에 뿌리를 내린 거죠. 이렇게 처음 씨앗일 때는 주변의 모든 상황이 고난이고 역경이지만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역경과 고난을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길이 아니라 나무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합니다. 인생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어려울지라도 우리 같이 어깨동무하고 가면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길은요. 아침에 본 웹툰에 나온 공시생의 사연처럼 남들은 다 앞서가고 있는데 자기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즉 경쟁구도가 나도 모르게 생기게 됩니다. 길은 계속 가야 되는데, 남들은 좋은 길로만 가는데 나만 힘든 길에서 고생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내 길은 막혀서 오도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인생 자체가 고달프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을 나무에 비유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젊었을 때 씨앗을 뿌리는 과정에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저자에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신은 공평해가지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넘치는 에너지를 준 반면에 지혜는 주지 않고, 나이먹은 사람에게는 힘을 뺏어간 대신에 지혜를 줬다고요. 그래서 젊었을 때는 넘치는 에너지를 최대한 써서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하고, 그렇게 해서 뿌리를 내린 다음에는 웬만한 시련도 잘 이겨나갈 수 있다고요. 

인생이 나무라면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서 그곳에서 나무다운 모습으로 성장을 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줄 수도 있고, 곤충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어줄 수 있고, 넝쿨식물들에게는 삶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든 분야가 무엇이든 나름대로 뿌리를 내려서 성장을 하게 되면 그때는 자기 자신만의 삶이 아니고 주변 중생들을 위한, 주변 존재들을 위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지금 저 같은 경우도 승가사회라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보니 집합금지 기간이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수 있지 않습니까. 주변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 제가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서 웬만한 시련이나 어려움은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극복을 해나갈 수 있는 겁니다. 

숱한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된다 

“그럼 어떤 나무가 좋아요?” 라고 누군가는 물을 수 있겠습니다. “큰 참나무가 되고 싶어요.” “덩굴나무는 싫어요.”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느냐?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세워놓은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못합니다. 저도 제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40년 전에는제가 이 자리에 있으리라고는 꿈도 안 꿨고, 30년 전에는 꿈에서도 이럴 거라고 상상도 못했고,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렇게 광주에서 생활하리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새털보다 가벼운 숱한 우연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내 삶이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나 사소해서 그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연이 있을 수 있고요. 어떤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 사무치는, 예를 들어 ‘그때 그 일만 없었어도’ ‘그 전화만 안 받았어도’ ‘그 다음 버스만 탔었어도’ 하는 우연도 있을 겁니다. 

모든 우리의 삶은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삶을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필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는 거예요. 우연으로 다가와서 필연이 되는 것. 그게 인연입니다. 스쳐 지나갈 때는 별볼일 없는 우연이었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것이 필연 운명 숙명이 되는 겁니다.

의지와 우연이 만나 인생이 된다 

그런데 인생에 우연밖에 없다고 하면 내 인생이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몰라요. 오직 불확실한 미래가 있을 뿐이죠.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들을 만났을 때. 다시 말해 내 안에 있는 나의 의지가 나에게 다가오는 숱한 우연들을 만났을 때 그것이 나의 현재가 되고 나의 미래가 되고 모여서 나의 인생이 되는 겁니다.

얼마 전 법문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자연의 섭리이고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의 뜻이라고요. 필연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의지와 내 주변을 둘러싼 숱한 우연들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이 길이 아니고 나무일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의지처가 되고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우연일지라도 선한 인연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나의 의지가 자비심으로 발현되어야겠습니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를 스쳐가는 우연의 끝엔?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우리가 인생에서 삶에서 범하는 많은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생을 혼자 가는 길로 생각하는 겁니다. 나 혼자 온갖 시련과 역경을 헤치고 나가야하는 길로 생각합니다. 또한 성공한 사람이 간 길을 그대로 가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숱하게 많은 자기개발서가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너도 똑같이 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런데 이거는 틀린 말이에요. 

우리의 삶은 숱한 우연들이 얽히고 설키고 겹쳐져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만의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빌게이츠가 아니고 이건희가 아니에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건희처럼 돈을 못 벌어요. 왜냐하면 조건과 마주치는 인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 나의 의지가 만드는 겁니다. 그야말로 숱한 우연들이 만나서 필연이 될 때 나의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남들이 잘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말고, 지금 나에게 닥치는 숱한 우연과 인연을 소중히 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인연이 되고 싶다는 선한 의지를 낼 때 이 세상이 그야말로 불국정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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