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간

일상 속에서 육체의 건강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산책을 하곤 한다. 산책은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좋은 처방전이 된다.
사람들은 일상을 떠나 여행길에 나선다. 제주 올레길, 산티아고 순례길, 시코쿠 순례길 등 길을 걸으며 무언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털어내고는 한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것. 일상에서 길을 떠나오는 것. 그것은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다. 낯선 곳에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큰 지혜이다.
일상에서는 나와 남 회사, 크게는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봉사의 자세로 살고 일상을 벗어난 시간은 내 마음의 수행을 위해서 쓸 수 있다면 지혜와 자비 양 날개를 두루 갖추는 불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누구인가, 산책, 알아차림, 여행

무등산 산책길

길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가 많고 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길 위에서 배우는 지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가능하면 매일 산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로 산책을 하는 코스가 증심사에서 버스 종점까지 내려갔다가 제일수원지를 찍고 오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로 포행을 다니다 보면 산책하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젊고 늙고 혼자 혹은 같이 오시는 다양한 분들을 길 위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면 헬스장에 가서 트레이너의 코치를 받으면 아주 훌륭하게 육체의 건강을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는 이유가 저처럼 꼭 육체의 건강만을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주로 혼자 산책을 하는데요. 같은 코스로 산책을 하기 때문에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그날그날 눈에 확 띄는 풍경이 있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잡생각을하기도 하고요.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단지 산책을 육체의 건강만을 위해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산책이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으로써의 산책

혼자 산책을 하면 육체의 건강 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선방에서는 앉아서 하는 좌선만이 수행이 아니고 걸으면서 하는 경행도 중요한 수행의 하나로 봅니다. 남방불교에서는 하루 수행에서 걷는 것과 앉는 것을 같은 비중으로 둘 만큼 걷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도 제공해주지요. 

이렇게 산책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육체적인 건강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마음의 건강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수행이면서 마음을 즐겁게 하는 여러 측면의이로움을 준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날씨가 좋아서 앞뒤로 사람이 붐빌 정도로 산책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어제는 앞뒤로 아무도 없이 저 혼자 산책을 했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몇 년 전, 보름 정도 제주 올레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올레길 걷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면 제주도 한 바퀴를 다 도는 데에 한 달가량이 소요됩니다. 저는 보름 동안 올레길의 3/4 정도를 걸었지요.

제주 올레길

그 때가 11월 초였습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고요,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도 “내가 왜 이렇게 걷고 있지?” 이런 생각을했고요.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그땐 왜 그렇게 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전 7시 30분쯤 걷기를 시작하면 짧게는 여섯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씩 걷게 됩니다. 오후가 되면 엄청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에 그날의 코스가 끝나고 나면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쉬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다음 날 일어나면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다음 코스를 걷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됩니다. 

사람들이 혼자 올레길을 걸으러 간다고 하면 뭔가 커다란 고민이나 걱정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올레길을 걷는다고 해서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올레길 혹은 순례길에 오르는 이유는 무언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일상에서는 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순례길로 일본의 시코쿠순례길이 있고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제주 올레길 역시 종교적인 순례길은아니지만 잘 알려져 있는 걷기 코스입니다. 

산책길과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면 순례자의 탑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에서 오는 순례객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가는 전통이 있다고 하는데요.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순례자의 탑에 놓고 가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일상생활에서 가지고 있던 풀지 못한 숙제를 순례자의 길에 놓고 가라는 뜻일 것같습니다. 그것이 해결 가능한 문제일 수도 있고 실존적인 고민일 수도 있겠지요.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산티아고에 가지 않더라도 내가 매일 걷는 무등산 산책길이 순례길이 될 수 있습니다. 산책길이 순례자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혼자서 걸어야 합니다. 둘째, 풍경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내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산책길이 순례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길을 나선다는 데에 있습니다. 일상생활이라는 것은 반복되는 생활입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익숙해진 공간입니다. 반복되고 익숙해진 공간은 내가 소유한 시간과 공간입니다. 나의 시간과 나의 공간이 일상이지요. 이런 일상 속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안에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 일상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마음은 내면으로 향하게 됩니다. 스님들의 경우에도 기도하는 스님들은 일상이 아주 단조롭습니다. 기도하고 밥 먹고 기도하고 포행합니다. 그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일상이 단조로울수록 마음은 밖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게 됩니다.

여행과 관광

그런데 우리 일반인들의 생활은 반복적이지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단조롭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보는 것, 듣는 것, 만나는 사람, 해야 될 일에 쏠려서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 마음이 힘들어지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집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길 위에 나서는 것이고, 길 위에 나설 때 혼자 나서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산책길이든 순례길이든 길을 나서는 것은 일상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행입니다. 여행이라는 말은 ‘나그네가 가는 것’입니다. 여행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을 떠나 두루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태국 여행, 일본 여행, 서울 여행… 흔히 생각하는 여행도 살고 있는 고장을 떠나 돌아다니는 것이지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관광’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여행과 관광은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관광은 관광지의 풍경이나 풍류를 보고 즐기는 것입니다. 관광의포인트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접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맛보며 즐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행과 관광은 말 뜻부터 다릅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행은 혼자서 일상을 벗어나 길 위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낯선 곳, 일상적이지 않은 곳, 익숙하지 않은 곳,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곳입니다. 

낯선 공간에 가면 모든 것이 생소합니다. 이렇게 낯선 공간에 갔을 때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외향적이 사람은 호기심이 발동해서 보고 듣고 맛보고 싶어합니다. 보고 듣는 것, 즉 내 바깥으로 마음이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낯선 곳에 가면 순간적으로 사고가 중단되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낯선 곳에 자신을 내던져서 나 자신을 내다보는 것. 이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큰 지혜입니다. 우리가 길 위에 나서는 이유는 내 자신을 자각하기위해서 입니다.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산책길이 주는 선물, 내면과의 조우

그런데 관광이 되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스크린을 통해 관광을 합니다.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갈 수 없는 곳을 봅니다. 스크린을 통해 일상에서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봅니다. 관광에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행과 관광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행은 외부로 향하는 마음을 내 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시간입니다. 길 위에서 여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길입니다. 여행하고자 한다면 결코 관광에 그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길 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매일매일 꾸려가고 있는 일상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얼마나 익숙한 것이 많았는 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일상을 떠나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짧은 산책길이라도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멀리 여행을 가더라도 관광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일상의 봉사, 길 위의 수행

한편, 어제는 광주 시내에 나가서 ‘행복한 피자가게’ 봉사를 했습니다. 일정이 끝나고 나자 참 피로했는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책하는 거나 봉사하는 거나 운동으로 치면 비슷하겠네.’ 그런데 스마트 기기의 기록을 보니까 육체적인 움직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즉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는헬스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등 운동을 해야 합니다. 봉사는 육체의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봉사처럼 개인의 육체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생산적인 활동이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봉사 혹은 회사를 위해 하는 생산적인 활동이라 하더라도 사회를 유지하게끔 하는 활동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봉사의 의미를 어제 피자가게가 끝나고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은 나에게 익숙한 시간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고 익숙한 공간입니다. 이런 시간과공간은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좋고, 일상을 벗어난 길 위의 시간에서는 내 마음의 수행을 위해서, 내 마음을 자각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날개가 한 쪽만 있는 새는 날 수가 없습니다. 봉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요, 수행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수행자가 되는것도 아닙니다. 올바른 불자라면 수행과 자비행을 균형 있게 해야 합니다. 때문에 일상에서는 직업일지라도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길 위의 시간은 내 마음을 올바로 닦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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