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의 중노릇 하는 법 2

생사를 면한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닌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서 중생들의 수행은 시작된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생각을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수행은 나아가 생각의 본질의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하며, 생사를 면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화두는 의심하는 것이되, 의심하기 전에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을 한군데 가만히 두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 주력이나 독경, 염불 등 다양한 수행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딴생각이 들더라도 수행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딴생각을 하는 간격이 길어질수록 수행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렇게 마음을 붙잡아두는 연습이 끝나면 붙잡은 마음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관찰한다. 이렇게 수행할 수 있도록 사람으로 태어난 인연이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를 느끼는 것도 훈련을 통해서 증장시켜 나가야 한다.

#경허선사, 경허스님, 수행, 의지

일상의 행복에서 수행은 출발한다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궁구하되 보고 듣고 일체 일을 생각하는 놈이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고? 모양이 있는가 모양이 없는가, 큰가 작은가, 노른가 푸른가, 밝은가 어두운가 의심을 내어 궁구하되

마음을 궁구하다는 말은 마음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마음만 찾으면 생사를 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찾는가? ‘잘’ 찾아보라고경허스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 시간에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는 생사를 면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중생들은 이런 거창한 이유가 잘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도사도 아닌데 생사를 면하는 것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상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가 아주 많습니다. 괴로울 때, 슬플 때, 우울할 때, 불안할 떄, 심심할 때, 따분할 때, 화가 날 때, 누군가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너무 힘들 때 등등. 이런 모든 감정들은 결국 고통입니다. 이런 감정이 있으면 매 순간순간 마음이 괴롭습니다. 마음이 힘드니까 인생이 고달픕니다. 

우리 중생들은 마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마음이 있으면 인생이 고달픈 거죠. 여기에서부터 살펴보면 됩니다. 굳이 생사를 면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우선은 평소 마음이 불안하고 괴롭고 툭하면 짜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도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여러분은 이미 수행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차담을 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거나 평소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하는데요. 전혀모르는, 늘상 처음 보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절에 오기 전에 전지훈련이라도 받고 오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스님,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잡한 머리를 정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생각을 좀 안 할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템플스테이에 와서 해결하고자 하는 아주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궁금증인데요. 이것이 바로우리 수행의 출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음 찾기에 앞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부터

경허스님의 말씀처럼 생사를 면해 불생의 몸을 얻는 것보다, 지금 당장에 내 머리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우니 이것을 없애고 싶은 겁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주로 불안한 생각, 두려운 생각, 초조한 마음, 근심 내지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질투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마음들이 내 마음 속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오니까 참 괴롭습니다. 

옛날에 티벳에 아주 존경받는 큰스님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스님께서 아주 맛있게 공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제자가 생각하기를, 큰스님이 밥을 맛있게 잡수시는 데에 몰두하고 있으니까 지금 뭔가를 물어보면 부지불식간에 깨달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지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불쑥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님,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큰스님이 툭 대꾸하기를 “생각과 생각 사이를 길게 하면 된다.” 하였습니다. 

템플스테이 오신 분들이 제게 하는 질문도 같습니다. 내 생각을, 내 감정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내 감정을 다스릴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생각을 다스리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생각과 생각 사이를 길게 놓되, 그 생각과 생각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즉 무념의 상태를 길게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고 알아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 내 생각을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여기에서 시작해서 생사를 멸하는 경지까지 가는 겁니다. 처음부터 생사를 면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울 수도 없고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내 마음을 좀 편하게 해보겠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생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되는 것이고요. 생각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생사를 면하는 경지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못한가? 이유는 많습니다. 자식 때문에, 남편 때문에, 친구 때문에… 살펴보면 이유는 많죠. 그러나그것들은 다만 내 밖에 있는 인연들일 뿐입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인연들이 나에게 영향은 줄 수 있지만, 꼭 이것들로 인해 마음이 힘들필요는 없습니다. 내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하는 것은 내 마음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을 살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의심하기 전에 집중하라

고양이가 쥐잡듯 하며, 닭이 알안듯 하며, 늙은 쥐가 쌀 든 궤짝을 좇듯하야 항상 마음을 한군데 두어 궁구하야 잊어버리지 말고의심하야 일을 하더라도 의심을 놓지 말고 그저 있을 때라도 의심하야 지성으로 하여 가면 필경에 내 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을것이니 부디 신심을 내어 공부할지니라.

이 구절의 핵심은 ‘의심을 하라’, ‘의심을 놓치 말라’는 것입니다. 의심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한군데 두어서 궁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힘든 부분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부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나무 위에서 날뛰는 원숭이 같은 것입니다. 이 마음을 한군데 가만히 두는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이걸 못하면 설령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 의심을 하더라도 금방 딴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을 한군데 두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주력이라든가 진언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묘장구다대라니를한다고 하면,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오로지 신묘장구대다라니만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열심히 하면 됩니다. ‘저는 하도 많이하다 보니까 신묘장구를 하면서도 머리속으로는 딴생각이 들어요.’ 하는 것은 핑계입니다. 열심히 안 해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집중할 수 있을까요?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해야 합니다. 딴생각을 하면 ‘아 지금 딴생각을 했구나’ 하고 다시 신묘장구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딴생각을 잠깐 하더라도 얼른 신묘장구로 돌아와서 해야 하는데 ‘내가 또 딴생각을 했네. 내일 모레면 저승길 갈 텐데 이렇게 집중을 못해서야 되겠어?’ 이렇게 딴생각을 이어 나가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딴생각 잇지 말고 집중으로 돌아와야

내지는 신묘장구를 하는데 오늘따라 너무 잘 되는 겁니다. 7독을 해도 술술 막히지가 않아요. 그럴 때 하는 딴생각은 어떤 생각입니까? ‘와 오늘은 정말 잘 된다. 역시 내가 이제는 길이 들었구나. 공부가 좀 된다.’ 이것도 딴생각입니다. ‘끝나고 밥을 뭘 먹을까?’ 하는 잡생각만 안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잘 된다, 안 된다 하는 것들. 신묘장구 말고 다른 것은 모두 딴생각입니다. 

마음을 한군데 두려면 오로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하되 항상 정신을 차리고, 딴생각을 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합니다. 딴생각을 했다가 돌아오기를 수천 번, 수만 번 하게 되면 점점 딴생각을 하는 간격이 멀어질 겁니다. 점점 신묘장구에 몰입하는시간이 길어질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 대한 인식도 희미해지고요. 내 몸이 있는지 없는지도 희미해집니다. 

염불이든 참선이든 조금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다 알 겁니다. 희미해지는 경지가 대단할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하면 이런 경험을 다 합니다. 그런 경험이 몇 초, 몇 분 밖에 안 되니까 문제이지요. 단 몇 초라도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하면 열심히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점점 늘려 나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한군데 집중하는 단계를 선행해야 합니다. 이런 단계 없이는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의심하다가도딴생각이 들어서 집중하지 못하면 의심이 깨져버리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음을 붙잡아두고 관찰하기

지난 시간에는 ‘마음을 찾아라’라고 이야기했고, 오늘은 ‘의심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큰가? 작은가? 모양이있는가? 없는가?를 의심하는 겁니다. 의심한다는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가 내 앞에 있는데 저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인가?’라고궁금해하는 겁니다.

마음을 의심하라는 것은, 이것이 마음인가? 저것이 마음인가? 하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붙잡아 놓고 의심하면서 검증하는 겁니다. 만약 지금 내 마음에 불안감이라고 하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면요. 불안한 느낌을 붙잡아 놓고 ‘이것이 마음인가?’ 하고 뚫어지게 관찰하고 뜯어보고 의심하는 겁니다. 그렇게 쳐다보면 불안한 마음이 사라집니다. 사라진 것은 진짜 마음이 아니지요. 

집중해서 스님 법문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 놀라지 않습니까. 그럼 깜짝 놀라는 게 내 마음인가? 그것을 의심하는 겁니다. 이게 진짜 내 마음인가? 진짜 내 마음이라는 것에 확신이 들 때까지 의심하는 겁니다. 

대저 사람 되기 어렵고 사람 되어도 사나이 되기 어렵고 사나이 되어도 중노릇 하기 어렵고 중이 되어도 부처님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우니 그런 일을 깊이 생각하며

이 구절은 우리가 얼마나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려운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사나이니 중이니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중요한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으니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으로 태어난 인연이란

부처님 말씀이 사람된 이는 손톱 위에 흙 같고 사람의 몸 잃고 짐승된 이는 온 세상 흙 같다 하시고 또 사람의 몸 한번 잃으면 억만년이라도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하시며 또 항상 지옥에 처하기를 동산에 놀듯하며 아귀 귀신이나 축생 되기를 내 집에 있듯한다 하시며 또 한번 성불하면 다시 죽도 살도 않고 다시 고생을 아니 받는다 하시니 이런 말씀을 자세히 들어 생각하며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람이니까, 사람만 보고 사니까 이 세상에사람 밖에 없는 줄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이런 구절이 그다지 피부로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개미는 얼마나 많이 살고 있으며 바다 속에 플랑크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들을 각각개체수로 따지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이 클까요 플랑크톤으로 태어날 확률이 클까요? 

사람이니까 사람 일 밖에 못 보고 살지만 역지사지로 사람이 아니라 중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나무는 얼마나많고 풀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것들이 다 중생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나와 다른 것, 생명이 없는 것, 단순한 대상으로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별 대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수행을 하고 말고를 떠나서 우리는 항상 중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두고 불교에서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상까지는 못 버리더라도 인상은 버려야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얼마나 큰 혜택을 받고 얼마나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소중함을 느끼는 것도 훈련의 결과

이런 마음은 훈련을 통해서 길러집니다. 의식적으로라도 나무가 되어서 생각해보아야 하고요. 바다 속 플랑크톤이 되었다고 생각해보고, 길고양이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훈련을 해야만 지금 인간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희유한 삶인가 하는 것을 지극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구구절절하게 마음이 와 닿는다면 공부가 좀 된 것이고요.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아직 공부가 덜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공감하는 마음이 수행이 얼마나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됩니다. 

 세상에 하고 많은 흙들 중에서, 손톱에 낀 흙 만큼이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라니.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너무나 힘들고 극소수라는 것을말합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이렇더라는 겁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했으므로 우리 자신이 손톱에 낀 흙만큼 적은 확률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깨달은 부처님 생각이 옳을까요? 우리 중생들의 생각이 옳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부처님 생각이 맞지 않겠습니까.

또 이전에 권선사라는 스님은 아침부터 공부하다가 해가 질 때면 다리를 뻗고 울어 가로대 오늘 해도 공연히 지내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고 날마다 그리한 이도 있고 공부하노라고 마음 지극히 머은 이를 모다 적을 수 없으니 다 죽고 살기를 잊고, 먹고 입기를 잊고, 잠자지기도 잊고 공부하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공부가 될 터이니 자세히 생각하며

얼마나 엄청난 각오로 공부에 임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용맹정진하는 불굴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나 이렇게 수행하지, 어떻게 내가 이렇게 하겠나? 하는 약한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와있는 대로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이 지금 나에게 없다고 해서 ‘나는 수행과 인연이 안 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해서는안 됩니다. 이런 절실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하늘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기 싫어도, 귀찮아도, 바빠도, 잠이 와도, 짜증이 나도 수행을 꾸준히 해야 이런 마음이 생깁니다. 

간절한 마음 내기도 수행의 일환

예를 들어 저 같은 사람은 지난 출가하고 20년간 수천 번 새벽예불을 했지 않겠습니까? 어림잡아 6,000번의 새벽예불을 했다고 하면, 그 중 3,000번은 대충 졸았을 거고요. 안 존 3,000번 중에서 2,000번은 딴생각 했을 거고요. 딴 생각 하지 않은 1,000번 중에서500번은 보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잘 보이려고 했을 거고요. 나머지 겨우 500번 정도 졸지 않고 딴생각 않고 열심히 예불 했을 텐데요. 그 500번 중에서 정말 마음이 정화되고 부처님과 하나가 된 것 같이 신심을 다한 것은 많아야 20~30번 정도일 겁니다. 

즉 하루이틀에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별로 간절한 게 없고 ‘지금 이대로 살다가 갈래 하는 마음’을 돌이키는 것도 수행입니다. 꾸준히 하다보면 간절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해도 생깁니다. 물론 한 번 생긴 간절한 마음이 변함 없이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간절한마음이 저절로 지속되는 것도 아니지만 반복 또 반복하다 보면 이런 마음이 어느 순간 정착하게 되어 경허스님 말씀처럼 ‘오늘 하루도 도를 깨치지 못했구나!’ 하며 안타까워 통곡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마음을 찾으려면 마음을 한군데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한 상태에서 ‘이게 내 마음인가?’ 하고 끝없이 의심하다 보면마음을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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