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직녀 이야기의 교훈

칠월칠석에 생각하는 견우와 직녀 러브스토리의 교훈.
각자 목동과 길상으로 건실하게 살던 두 남녀 견우와 직녀는 이를 기특하게 여긴 옥황상제의 주선으로 부부의 연을 맺지만, 사랑에 빠져 본래의 책무를 등한시 한 벌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벌을 받는다.
결혼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가정이라는 배를 출항시키는 출발점이다. 가정이라는 배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은 한때의 열렬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통해 관계를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있다.
인생을 두고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형식을 갖추고 그 형식을 유지해나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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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칠석과 칠성신앙

오늘은 칠성재일이기도 합니다. 증심사에서는 매달 칠성재일에 칠성기도를 합니다. 칠성기도는 나와 내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큰 병 없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칠성이란 누구입니까? 법당 왼쪽의 칠성단에 모셔진 칠성청탱화를 봅시다. 가운데 계신 분이 치성광여래불입니다. 칠성기도 정근을할 때 ‘칠원성군’이라고 칭하는 분이 바로 이 분입니다. 칠원성군은 중국 도교에서 북극성을 일컫는 말이고요, 불교가 도교의 칠성신앙을받아들이면서 칠원성군을 화신불의 일종으로 여겨 치성광여래로 칭하고 있습니다. 

치성광여래의 왼쪽 어깨에는 붉은 해를 상징하는 일광보살이, 오른쪽 어깨에는 달을 관장하는 월광보살이 있습니다. 해와 달을 관장한다는 것은 인간들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의미입니다. 해가 뜨고 지면서 세월이 흘러가고 인간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까. 아시아권에서는오래 전부터 칠성님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칠성신앙이 뿌리깊이 내려왔습니다. 

칠성님 즉 북극성이 거느리고 있는 것이 북두칠성입니다. 탱화에서도 치성광여래 아래로 일곱 분의 여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28명의 대신들이 있는데요. 축원할 때 말하는 ‘28수 대신’을 의미하며, 스물 여덟 개의 별자리를 상징합니다. 

칠성신앙과 불교와의 관계는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 설화는 불교하고 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견우와 직녀 러브스토리 배경

견우직녀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인 중국 한나라 시대에 시작된 이야기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고구려시대에 견우직녀 이야기가 기록에 등장하고요, 고려시대에는 공민왕이 견우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견우직녀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설화인데요. 

견우와 직녀 사이에는 은하수가 있어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다가 칠월 칠석 단 하루만 까마귀가 까치가 만든 다리 ‘오작교’를 건너 만날수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나 반가움의 눈물을 흘리니 칠석날에는 꼭 비가 온다고 하지요. 

왜 이런 설화가 탄생했을까요? 지금은 공기가 오염되어 은하수를 보기 위해서는 공기가 아주 좋은 한적한 곳으로 가야 하지만, 그 옛날에는 언제나 은하수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은하수 양쪽에 있는 견우성과 직녀성 두 개의 별이 절기상 칠석을 지내면서 가장 가까워지고 이 때가 지나면 슬슬 멀어진다고 합니다. 

견우 직녀의 눈물로 상징되는 비는 왜 옵니까? 절기상 처서가 되면 우리나라를 덥게 만드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효력이 약해져서 물러나고 북쪽에 있었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내려와 중간에서 장마전선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여름 장마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 오면 다시 한 번 맞딱뜨려 2차 장마, 가을장마가 오는 겁니다. 이렇게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시기가 겹치니 사람들이 이것을 두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다시 보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

옛날 사람들이 자연현상을 보고 이야기를 만든 데에는 반드시 교훈이 따릅니다. 견우직녀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다시 한 번 견우직녀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견우라는 성실한 목동과 직녀라는 베 짜는 길상이 살았습니다. 옥상황제가 보기에 각기 근면성실한 청년들을 맺어주면 더욱 건실하게살 것 같았습니다. 하여 이 선남선녀를 맺어주고 결혼을 시켰습니다. 배필을 만난 견우와 직녀는 서로를 열렬하게 사랑합니다. 그러면서견우는 소 치는 일을 등한시 하고 직녀는 베 짜는 일에 게으르게 됩니다. 

둘이 혼인을 하면 더욱 열심히 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옥황상제는 분노했습니다. 하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를 갈라놓기에 이릅니다. 큰 실의에 빠진 두 청춘남녀를 위해 까마귀와 까치들이 허공에서 자신들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은하수를 건널 수 있게 합니다. 오작교를 건너 만난 견우와 직녀가 서로 부둥켜 않고 기쁨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더라는 날이 바로 칠석인 것이지요. 

여기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과거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건실하게 키워나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주어진 의무이자 역할이었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개인적으로 만나 데이트 하고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건실한 두사람이 만나 훌륭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누군가 인연을 맺어준 것입니다. 그만큼 결혼이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남녀가 만나 서로 마음이 통하고 좋아하면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결혼은 하나의 가족을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의 출발선입니다. 결혼에 있어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 이후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이 가정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부부가 이끄는 배의 주인은 오직 부부 

부부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잠깐 좋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야 해요. 그래야만 가정이라는 틀이 유지되는 것이지요. 

결국 관건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을 유지하는 것인데요. 이런 사랑은 결코 뜨겁거나 불타는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랑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람의 성격과 자라온 성장 환경, 교육 수준, 경제 수준 등이 비슷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너무 차이 나거나 성격이 너무 다르면 오래가기가 몹시 힘들겠지요. 

저는 모르지만 여러분은 이미 경험을 해보아서 아실 겁니다. 흔히 가정을 배로 비유합니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아주 작은 보트일 수도 있고 돛단배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배로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다 보면 새로운 가족이 생기기도 하고 배 역시 더 크고 튼튼해집니다.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배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오직 부부 두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이 배에 잠시 승선한 승객들이에요. 자식들은 언젠가 이 배를 떠나 자신만의 배를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들을 내 배의 승무원이라고 착각하지만 자식 역시승객입니다. 

자식이 자신만의 배를 만들어서 바다에 띄울 때 “너는 영원히 우리하고 같은 소속이야. 겉으로는 떠났다고 하지만 네 배는 언제나 내배 옆에 위성처럼 붙어 다녀야 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선 안 되죠. 그들에게는 그들 앞에서 펼쳐질 모험이 있을 테니까요. 승객 중에는 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가과 처갓댁의 관계자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분들도 나중에는 다 배에서 내리고 결국 처음 이 배를 띄울때처럼 부부 두 사람만 남습니다. 

두 사람이 어렵고 힘들게 배를 만들어서 출항을 하면 중간에는 승객이 타고 내리고 사람이 많아지기도 하고 배도 튼튼해지지만 나중에가면 승객은 모두 저마다의 목적지에서 하선하고 부부 두 사람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부부라는 관계로 인생을 꾸려가는 과정입니다. 

스님에게 연애 상담을?

가끔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젊은 여행자들이 연애 상담을 합니다. 어떻게 스님한테 연애 상담을 하는가 싶을 때도 있는데요. (웃음) 그럴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썸을 타고 있거나 잠깐잠깐 연애를 한다는 영역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관여할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민하는 것이 특정 사람과의 관계 유지에 있다면 몇 마디 조언을 해줄 수는 있겠습니다.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형식이 있어야 합니다. 형식 없이 마음만으로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학창시절을 생각해봅시다. 학교 친구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하루 종일 학교에 같이 있어야 하니까 친구가 됩니다. 직장 동료도 매일 출근하면 만나야 하니까 친구가 돼요. 그런데 이런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거나 직당에서 퇴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됩니다.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각자 자기 생활을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처음 1, 2년은 가능하겠죠. 그러나이런 식으로는 관계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관계를 지속하는 

인생을 두고 이 사람과 오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거기에 걸맞은 형식을 만들어야 해요. 대표적인 형식이 결혼일 수 있겠죠. 그런데굳이 사회가 인정하는 결혼이라는 형식이 부담스럽다면 동거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결혼, 동거 아니라 그 무엇이 됐든 나름이 상황에 걸맞은 형식이 있어야 관계를 지속해갈 수 있습니다. 

잘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성으로써의 관심, 호기심, 본능 같은 것들로 감정이 오가는 것은 그 시기에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고요. 내 삶에 있어서 어떤 사람과 관계를 오래 지속해 나가려면 그 관계는 실용적인 관계, 현실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해야만 지속됩니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관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필요하면 서로 타협할 수도 있고 합의할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여기는 내 영역, 이것은 내 것, 나누어서 침범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떤 경우에는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치 처음 연애할 때처럼 설레는기분을 가지기도 합니다. 지속되는 관계에는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자면 같은 생활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법문을 듣는 여러분들이 자녀나 손자 손녀의 결혼, 연애 문제를 접한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결혼을 하라, 마라.”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꼭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틀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

견우와 직녀 이야기에서도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 두 사람은 각각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인데 결혼을 하면서 오히려 가정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저버린 것입니다. 

부부를 이루고 살 때는 사랑도 필요하지만 가정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지켜가는 데에 꼭 해야 할 의무와 책임, 역할이 더 많은 부분을차지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식들이 결혼을 할 때도 꼭 짚어주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지점입니다. 

어떤 사람과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형식과 틀을 갖춰야 하고, 그 틀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의무를 져야 한다는 것. 보고 싶으니까 보고 같이 있고 싶으니까 같이 있는 것만으로는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 

진정한 부부애는 뜨겁고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랑입니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랑입니다.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는 낭만이 아니라 따끔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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