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환승역

나는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왜 주변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왜 세상은 나를 화나게 하는 걸까?
‘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화는 누군가와 주고 받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이 거친 상태에서 고요한 상태로 갈 때는, 마음 중간에 만들어 놓은 환승역으로 찾아가자. 환승역이란 다름 아닌 평상시에 습관적으로 해왔던 수행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버럭!’ 대신 ‘옴!’ 하고 외치는 것. 그것이 화를 해결하는 비결이다.

마음의 환승역

나를 화나게 하는 세상

오늘은 ‘마음의 환승역을 하나씩 가지자’는 주제를 가지고 짧게 법문을 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모임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 나는 정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을 잘 다스려서 고요하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주변사람들이 자꾸 나를 화나게 만들고, 열 받게 만들고 말이야. 나만 바보 취급당하면 혼자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도와 줘야지.”

가만 들어 보니까 틀린 말도 아닙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송광사 사보 편집장을 겸임했었습니다. 몇 년 전 5월 초파일 호를 준비를 하는데 다 만들고 인쇄 들어가기 직전에 초파일 등값을 잘못 써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마침 저녁기도 들어갈 무렵이었는데, 기도를 하려면 뭘 먹어야하는데 하필 공양주는 없지, 사보는 잘못 나왔지, 계속 전화는 오지, 기도는 들어가야 되지……. 스트레스를 넘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되는대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전화로 지시를 하여 겨우 급한 불을 끄고 법당에 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해결이 됐는데도 화가 안 풀리는 겁니다. 목탁을 치다 보니까 화가 더 나고, 화가 나니까 목탁을 세게 치게 되고. 나중에는 이러다가 목탁 채 부러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 있는 겁니다. 그때 번쩍 하고 깨달은 것이, 내 안에서 마치 폭포처럼 분노가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못해가지고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는 실재하는가?

앞서 이야기 한 불자님과 마찬가지의 감정입니다. 불자로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안 도와준다는 것.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 이 생각은 맞는 생각입니까? 틀린 생각입니까?

이런 것은 화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슬픔, 즐거움, 괴로움, 우울,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내게 슬픔만 안겨주고 떠나간 사람’ 내지는 ‘우울한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누군가 나에게 1kg짜리 화를 주고 내가 그 1kg 짜리 화를 받아서 그만큼 화가 난 겁니까? 과연 화라고 하는 감정에 실체가 있어서, 누가 나한테 화를 줘서 화가 나고, 내지는 아름다운 경치가 나에게 행복감이라는 실체를 줘서 내가 행복한 겁니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 텐데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치 화를 주고받고 슬픔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들은 거친 감정 즉 화나 슬픔 등의 감정에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런 착각을 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근본적으로는 우리들의 사고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곳에 시계가 있구나, 마이크가 있구나, 저기 사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듯이 감정도 그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누가 나에게 화를 ‘주었나’?

우리는 화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니고 상대방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누가 잘못했는가? 누가 나를 화나게 하는가? 누가 나를 슬프게 하는가? 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문제로 인해서 나에게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가?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간단히 말하면 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누군가의 탓이라고 하면 내가 아무리 마음의 풍경을 유지하려고 해도 원인 제공자가 눈앞에 보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서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생각하면 문제 해결이 훨씬 더 쉬워집니다.

지금까지 분노, 슬픔, 두려움, 우울함 등의 감정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옛날 조사스님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사스님 말씀에…

평소에 마음을 아주 고요한 곳에 머물게 하는 것은 단지 시끄러운 가운데에서 사용하기 위할 뿐이다. 만약 시끄러운 가운데 힘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일찍이 고요한 가운데에 있어서 공부를 짓지 않음과 같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평소에 고요한 곳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는 것은 시끄러운 곳에서 써먹기 위한 것이고, 시끄러운 곳에서 못 써먹으면 평소에 고요한 곳에서 백 날 공부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도 가만히 보면 말이 좀 애매합니다. 무엇이 고요하고 무엇이 시끄러운지가 정확하게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일차적으로 고요한 장소라고 하면 저 산속에 있는 조용한 선방 같은 곳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에 선방에서 참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대하면서 골치 아픈 일, 화나게 하는 일,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들에 마음이 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고요한 곳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청정을 이루어서 평화로운 상태, 마음이 거칠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고요한 곳, 시끄러운 곳 등의 표현이 실제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에서 어떤 감정이 막 요동치지 않는 상태,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우울해 하는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가 고요한 곳입니다. 시끄러운 곳은 그 반대의 감정이겠지요. 그러니 사람이 죽은 나무 같이 하루 24시간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 봐야 공부에 진척이 있습니까? 오히려 기뻐하고 슬퍼하고 우울해 하는 시끄러운 마음의 거친 감정들을 잘 다스릴 때 거기에 공부의 진척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고요한 곳의 의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카페에서 공부를 많이 합니다. 엄청나게 시끄러운데 의외로 공부가 잘 됩니다. 과학적으로 백색소음이라고 해서 오히려 무의미한 잡음이 속에서 뭔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겁니다. 혼자 고요한 숲길을 산책한다고 하면 마음이 평화로울 것 같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새소리, 꽃 핀 모습, 거미줄에 매다린 물방울……. 마음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 합니다. 실제로 주변은 조용한 곳인데 오히려 마음이 고요하지를 못 한 겁니다.

고요한 곳, 시끄러운 곳을 말하는 것은 주변 환경이 그렇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항상 고요하게 유지하는 게 수행이며 그것이 관건입니다.

시끄러운 가운데서 마음이 고요하려면

시끄러운 가운데서 마음이 고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 번째는 아까 말했듯이 평소에 마음이 고요할 때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고요한 게 아니라 화가 난 상태에서 수행을 하면 수행이 잘 될까요? 화가 난 것을 아는 순간 화가 사그러듭니까? 사실 우리 같은 중생들은 이것이 관건입니다. 일단 고요한 상태로 가면 수행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고요한 상태로 내 마음이 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오늘의 주제인 ‘마음의 환승역’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자, 우리가 서울 지하철을 타고 어디에 가야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미리 몇 호선을 타고 어디에서 갈아타면 된다는 코스를 봐놓아야 합니다. 지하철 타기 전까지는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데 실은 내가 환승할 곳만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청량리에서 신촌으로 간다고 할 때, 1호선 청량리에서 탈 때는 ‘어떻게 하면 신촌으로 가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1호선 시청역에서 내린다는 생각만 하면 됩니다. 환승역인 시청에 내려서는 2호선을 타고 신촌에서 내리자, 그 생각만 하면 됩니다. 이게 서울에서 헷갈리지 않고 목적지를 잘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거친 마음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가는 환승역, 수행

마찬가지로 마음이 거친 상태에서 고요한 상태로 갈 때에도 중간에 환승역을 하나 만들면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화가 막 나거나 우울하거나 슬픔이 밀려오는 어떤 순간에 습관적으로 하나의 수행을 하는 겁니다. 그 수행은 평소 마음이 고요할 때 열심히 해서 습관으로 익혀두었던 수행입니다. 광명진언, 신묘장구대다라니, 참선 등 어느 것이나 좋습니다. 거친 감정이 일어날 때 그 상태에서만 벗어나기만 하면 문제의 반은 해결되는 겁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내가 평소에 습관적으로 하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본인이 평소에 하던 수행법을 하기 싫어도,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그냥 억지로 하고 봅시다.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의 제일 큰 문제가 뭡니까? 무기력한 겁니다. 내가 우울한 걸 잘 알고,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도 다 아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럴 때 내가 평소에 마음이 평온할 때 하던 수행법을, 신묘장구대다라니든 옴마니반메훔이든 광명진언이든 하는 겁니다.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외우면 그 상태에서 일단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게 내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이끄는 환승역까지 데려다 주는 일입니다.

주변 상황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아도, 시끄러운 내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옮기는 훈련을 평소에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내 마음에 환승역을 만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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