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다
요즘 템플스이에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 취준생들이 많이 옵니다. 일단은 시간이 많고 그 다음에는 머릿속에 복잡합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해야 하니까 머리도 식힐 겸 템플스테이에 오는 겁니다. 차담을 하면서 이 취준생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저 같이 시험 준비하는 사람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스님 말대로라면 신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존재이고, 신을 믿는다고 해서 확실한 보증수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점쟁이가 미래의 일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1년 뒤에 누가 합격할 것인가는 과학적으로도 알 수가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하냐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할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부처님도 모르는 일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 상당히 많습니다. 취준생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합격할지,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사업이 잘 풀릴지, 아주 먼 미래가 아닌 1년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합니다.
취준생의 질문에 일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준비하겠다고 결심한 당시의 자신을 믿으세요. 그때의 자신을 믿고 그때의 결심을 믿을 뿐 내년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불안한 이유는 붙고 싶다는 희망과 욕망이 크기 때문인데,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일은 나만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세상 모든 것은 연기법에 의해 움직입니다. 나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미래도 나의 노력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인연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무리 합격하고 싶다고 희망해도 세상 일은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과정은 통제할 수 있지만 결과는 본인의 영향력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이라 수긍하고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동안 불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을 것이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저의 대답이 영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친구는 무엇을 의지하고 싶어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언가 의지하고 싶고 믿음의 대상이 필요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이 친구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스스로 그 일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확신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그 확신은 내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 밖에서 결코 찾을 수가 없어요. 안에서 믿음의 대상을 찾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고, 이것을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는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나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자신감입니다. 결국 취준생 친구는 자신감이 부족했던 겁니다. 나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매일매일 공부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믿음이 부족한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밖에서 무언가 믿을 대상을 찾는데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지요.
예를 들어 아이가 아버지에게 주말에 해수욕장에 가자고 합니다. 아버지가 알겠다고 했는데 주말이 되어도 해수욕장을 안 갑니다. 아버지가 다음에 가자고 하면 아이는 조금 실망하지만 다음주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다음주에도 안 가고, 그 다음 주에도 안 간다면 아이가 아버지를 믿겠습니까? 아버지가 먼저 가자고 해도 안 믿을 겁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이에게 있어 외부의 대상입니다. 아버지라는 대상이 믿음을 못 주는 것은 앞서 말한 취준생이 자기 공부의 결과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이 같은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못 믿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못 믿는 겁니다. 왜냐? 아버지가 못 믿게 행동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취준생은 자기 자신을 못 믿는 겁니다.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죠.
자신에 대한 믿음, 대상에 대한 믿음
믿음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고, 두 번째는 자기 밖의 그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다. 자기 밖의 믿음은 그 대상이 신일 수도 있고 과학일 수도 있고 진리일 수도 있고 사상일 수도 있습니다.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이란 확인된 지식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하면요, 어떤 사람이 “서울에 가니까 남대문이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문이더라.”라고 말했을 때 마을 사람은 그걸 믿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직접 봤는데 사람들이 안 믿어주니까 답답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 몇을 데리고 서울에 가서 남대문을 직접 보여줍니다. 그 이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 사람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왜 그 말을 안 믿었습니까? 남대문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지식인데, 확인이 안 되니까 믿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서울에 가면 어마어마하게 큰 문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후에는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는 겁니다. 즉 지식은 지식인데 확인된 지식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믿음이라는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은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인데요.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의지를 굳세게 하고 자신을 담금질하고 힘든 환경에서 노력해서도 자신감이 생기겠지만,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갔을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자신을 올바로 아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된 지식에서 만들어집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앎에서 온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부터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안다는것은 자기 성찰이고 자기 관찰입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사상이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행동과 느낌, 감정, 생각 같은 것들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내가 지금 왼손을 쓰고 있는지, 오른발을 움직이고 있는지. 면밀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 쌓이고 쌓이면 그 안에 어느새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잘 믿음이 안 가지만 사실입니다.
미국의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확실성에 맞서는 용기 없이는 그 무엇도 이룩할 수 없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왜 그런가? 따질 필요 없습니다. 원래 세상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알 수 없으니까 미래입니다. 우리가 환하게 알고 있다면 그건 미래가 아닙니다. 아직 닥치지 않은 상황이니까 알 수 없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니까 불확실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무언가를 이룩하려고 하면 그 불확실함에 맞서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1970년대에 권투 챔피언이자 인종차별을 딛고 흑인의 권리를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무하마드 알리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불확실성에 맞서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이라던가 과학과 같은 간접적인 대상을 통해 믿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미래 시점의 상황에서 믿음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확실성에 맞서는 용기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자신감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나옵니다.
플라톤이나 무하마드 알리 같은 사람들은 이 같은 불안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들입니다.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지, 불안감은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는지를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은 이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입니다. 자신감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데에서 나옵니다.
자신을 알아차리는 습관이 자신감을 만든다
1년 뒤 시험에 붙을지 떨어질지 몰라서 불안한 상황이라면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런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런 말이 힘이 될 수 있습니까? 돈 한푼이 없어서 굶는 사람에게 ‘돈을 많이 벌어라.’ 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말이지요.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면서 너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오히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평소에 해왔던 자기성찰에서 나옵니다. 평소에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 그런 연습을 해야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이 습관적으로 자리잡은 상태여야만 희망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끄집어올 수 있는 역량이 비축되는 것입니다.
평소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이 자신감을 가지는 길이고 불확실한 미래에 맞서는 용기를 키우는 길이고 우리 안의 믿음을 키우는 길입니다. 수행이 믿음이고 믿음이 수행입니다. 지금까지 믿음이 도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는데요, 오늘은 반대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심히 수행하면 그 안에서 믿음이 생깁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입니다. 나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그런 자신감은 나 자신을 평소에 성찰할 때 쌓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오스카와일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자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내가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내면 낼수록 행복은 멀어지는 겁니다. 부처님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번뇌의 뿌리를 뽑아버리라고 했지요. 내 안의 번뇌를 완전히 뽑는 방법이 바로 자기 성찰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을 살피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