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지구를 살리는 길

2020년 8월, 코로나19 재유행 상황에서 생각하는 ‘병든 지구를 살리는 길’.
자연은 기후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류를 총공격하는 상황에 인류는 제각각 분열과 갈등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인간만이 자성할 수 있는 존재이다.
부처님이 전륜성왕의 길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로 나선 것도 같은 이유이다. 현재의 인류도 오랫동안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본능을 다스리고 무명이라는 허상을 깨쳐야 한다. 병든 지구를 살리는 길은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다듬어나가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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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감 재고조 

정부의 강력한 권고사항에 따라 비대면 법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 법문에는 스님들만 자리하고 있는데요. 아직 광주시에는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내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연일 뉴스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지난 2월과 3월 당시 법회를 중단했을 때보다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과거의 양상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관성대로 ‘그냥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마스크를 쓰고 법회를 보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한 일일 듯하여 법회중지를 결정했습니다.

불자라면 잘 아시겠지만 여름 무렵의 가장 큰 행사가 백중 회향입니다. 봄철의 큰 행사였던 초파일에 이어 백중기도까지 중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흔히 하는 말로 선제적 대응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우리라도 앞장서서, 금전적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모범을 보이자는 데에 의견을 모은 것입니다. 다행히 신도분들께서도 협조를 잘 해주시고 있고요. 

어제 코로나19 뉴스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을 넘어 우리가 정말 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듯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확진자가 몇 명이고 몇 차 감염이라는 이야기가 주로 뉴스에 나왔는데 이제는 뉴스의 중심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교회 목사가 어떤 이야기를 했다, 방역지침을 어긴 교회에서 오히려 정부를 고발했다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지난 2월, 3월만해도 코로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했다면 지금은 음모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을 칭송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연의 총공세: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지난주 법문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주제로 왜 미신이 맹신이 되고 맹신이 광신이 될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상황을 전쟁으로 빗대자면 적들은 총공세를 벌이고 있는데 아군들은 내부에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격입니다. 아주 위중한 상황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인간의 입장에서 적이라고 하면 당장에는 코로나19를 떠올리지만 실은 더한 것들이 많습니다.당장 내일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는 태풍은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풍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120년만에 처음으로 어마어마한 쌍둥이 허리케인이 동시에 올라오고 있다고 하고요. 유럽에서는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남미 쪽 볼리비아라는 나라에는 해수면이 상승하여 작물을 키우는 농장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말로만 듣던 ‘해수면 상승’의 위협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연 측은 육해공군이 총동원하여 인간을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지구 또는 자연이 인간을 응징하고 있는데 인간은 온세계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지는 못할 망정 각 나라마다 분열,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 귀중한 시국에 의사들은 파업을 하고 있고, 방역문제를 정쟁화시켜 특정인을 공격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화력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인간이 불리한 상황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있으면 결과가 뻔하지 않겠습니까. 

인류의 대응: 눈 가리고 아웅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기를 우리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30년이라고 합니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1도 올라갔고, 30년 안에 0.5도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지구 온도가 1.5도 올라가면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들이 멸종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러한 파국만은 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또렷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서는 이런 소식도 소개됐습니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이 인천에 있는데 2025년이되면 인천 매립장을 더이상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올해 안에 부지를 선정하고 설계를 해서 공사를 시작해야 2025년에 새로운 수도권의 매립장을 확보할 수 있는데 현재 부지 선정 이야기 자체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의 여파로 일회용품 쓰레기 배출이 엄청나서 2025년 전에 인천 쓰레기 매립장이 가득 차버릴 것으로 예상되니 사실은 무척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지요. 

전지구적 차원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람들은 과거에 살아왔던 방식을 전혀 바꾸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다시 말하면 돌고래나 침팬치와 같은 다른 동물들이 하지 못한 무언가를 인간들이 해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걸 우리는 문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요. 실은 이 문명으로 인해 작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근본적으로 따져 들어가다 보면 ‘과연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무엇이 다른가?’로 이어집니다. 그 다른 점을 알아야만 인류에게 닥친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흔히 다른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으로 도구의 사용을 꼽습니다. 언어라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표현도쓰고요. 그런데 이러한 가설이 옳지 않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도구는 원숭이나 개들도 사용하고요. 언어는 돌고래나 침팬치들도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장류나 유인원들은 어느 정도 까지는 학습을 할 수 있고 사람과 수화 같은 방법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서 말한 것들은 인간들만의 특징이 아닌 겁니다.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종교를 믿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이 말은 상당히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상당히 유행했던 호모사피엔스 전문가가 썼던 책의 핵심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고도의 사회화를 이루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어디를 가든,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같은 신을 개념적으로 공유하니까 인간사회가 지금처럼 체계화되고 분업화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힘으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다른 생명체가 이르지 못한 문명을 건설한 것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폭넓게 이야기하자면 ‘추상적인 개념’을 인간이 공유를 함에 따라서 사회적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는 주장인데요. 종교 역시 인간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침팬치 같은 경우도 무리에 따라 다르지만은 인간과 흡사한 종교적인 의식을 한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의 연구결과입니다. 

‘인간만이 자성할 수 있는 존재다.’

도구를 만든다던가, 언어를 사용한다던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던가… 이런 것들을 다른 동물들보다 더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한 잘못을 원상복귀 시키려면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당장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수행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를 통찰하고 수행하려면 나는 누구인지 우리는 무엇인지를 스스로 관찰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능을 다스리고 우리의 욕심을 다스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통찰해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뭔지를 스스로 찾아낼 때, 우리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작금의 무제를 해결할 단초를 우리는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어마어마한 신통력과 엄청난 고행과 수행, 교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은 앞길이 보장된 전륜성왕의 길을 버리고 출가를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해 수행자의 길로 나섰다는 겁니다. 

전륜성왕의 길이 아닌 수행자의 길 

지금 우리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쉽게 생각하면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인류가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전륜성왕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아주 힘든 이야기이겠지만요.

그런데 부처님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전륜성왕의 길이 궁극적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수행자의 길로 간 겁니다. 여기에서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인류가 봉착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부처님이 전륜성왕의 길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 마음에 있습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본능을 다스리고 무명이란 허상을 깨쳐야 합니다. 부처님이 했으니까, 불자니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행자적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 뜻한 바와는 다르게 지구가 심각하게 병들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진정한 자비심을 내야 합니다. 인류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서. 더 나아가 지구를 위해서 내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해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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