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사회가 병들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병이 나면 정상적인 자기 기능을 못합니다. 어제(2020. 3.) 기사를 보니, ‘IMF가 심장마비라면, 코로나19는 중증 당뇨병이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IMF는 심장마비처럼 갑자기 와서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만, 코로나19는 당뇨병같은 만성질환 같아서 이 사회를 오랫동안 힘들게 할 것이라는 기조로 이런 비유를 든 것입니다.
비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바로 이 사회가 병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같은 전염병은 강한 전파력을 가져서 결국은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뉴스에서 보다시피 현재 유럽, 미국, 중국 등 외국은 전시 상황입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이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학교, 관청 등 모든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고장난 것입니다. 코로나가 이 사회를 병들게 했다고 하는 것, 어떤 의미일까요?
코로나19가 신뢰를 깨뜨리고 있다
사회 유지의 기본은 신뢰입니다. 사회는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도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만원이라고 쓰인 종이를 가게주인에게 주고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면 가게 주인은 아이스크림을 줍니다. 이게 왜 가능할까요? 만원이라고 쓰여진 종이에 대한 신뢰가 이 사회에 퍼져 있으니 가능한 것입니다. 돈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깨지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종잇조각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이 신뢰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예를 봅시다. 최근 뉴스를 보면, 미국 사람들이 총알을 사재기를 합니다. 코로나19가 퍼지는데 왜 총알을 사재기하는가? 우리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만, 그들이 총알을 사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은 내가 지켜야 되겠다’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치안, 사법, 복지 서비스 같은 시스템이 나와 우리를 지켜줬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사람들 속에서 그 전에는 없던 불안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불안감과 두려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 ‘저 병에 걸리면 죽는다.’
결국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를 조장시켰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런 두려움과 공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나’라는 생각에서 온다
우리 불자들은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두려움은 ‘이 육신이 곧 나’ 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코로나19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균이 퍼져서 이 사회가 병들었지만,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 보면, 코로나19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병든 사회를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로만 코로나19에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정보통신망이 잘 깔려 있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에 잘 대응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한편, 정부에서 코로나19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서 모든 사람들이 즉각 공유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선제적인 방역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코로나19에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자기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민주주의적인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과학방역,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의료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방면이 종합되어 있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의 대응은?
우선 경제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잘 알다시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회적 약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걸려서 힘든 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고통받습니다. 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복구하는 것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데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평소 사람들을 만나면 악수를 합니다. 이제는 그 습관들을 가능하면 멀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직접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문화였다면, 앞으로는 온라인상에서의 만남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 될 것입니다. 온라인 생활에 잠재되어있는 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고민들도 필요합니다.
결국, 병든 사회를 고치려면 의료적 측면, 경제적 측면, 문화적 측면 등 모든 측면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앞장서서 코로나19에 맞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정부의 방침을 잘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지침에 무조건 따라야 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올바로 하고 있는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 입각하여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적인 문제에 의무감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한참 논쟁이 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을 어떻게 줄 것인가? 실행을 할 것인가? 실행한다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일부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때 사회가 속히 건강해질 것입니다.
코로나19를 대하는 불자의 자세
그렇다면 불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교는 자비의 실천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비는 남이 시켜서 마지못해 내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바라는 바 없이,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하는 것이 자비의 실천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과제는 이 사회를 하루빨리 정상적으로 복구시키는 것입니다. 사회가 병들었고,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일입니다. 자발적으로 내 주머니를 털어야 하고,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병든 사회가 빨리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행자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로나19팬데믹 직후, 봄날의 하늘이 이처럼 깨끗한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뜻밖의 선물입니다. 평일에도 무등산에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라는 맥락 없이 바라보면 정말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하늘은 맑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실은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멈춰서 바라볼 것, 바라보고 깨달을 것
‘느리게 사는 삶’, ‘잠깐 멈추어 서는 삶’이라는 말은 숱하게 해왔지만,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우리를 멈춰 서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때에 불자라면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 자기 수행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하며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결국은 우리들의 욕망을 쫓기 위해서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이 기회에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기회에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욕망을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갔던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해야 합니다.
실은 불자라면 당연히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동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라는 세균을 만나서 병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불자답게 살면, 앞으로 설령 이런 일이 또 생기더라도 우리는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불자답게, 더욱 더 불자답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코로나19를 이겨내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