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삶의 지혜

행복하게 사는 법

사람들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공동체가, 행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행복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긍정심리학자 마틴 샐리그만은 행복의 세 가지 요소로 즐거움, 몰입, 의미를 제시했다.
이 세 가지는 행복의 조건이라기보다는 현상에 가깝다. 즐거움은 유지되거나 증가하지 않고 갈수록 감소하고, 몰입은 유지하기 어렵다. 삶의 의미 역시 부여하기 어렵고 또는 너무 주관적이어서 늘 변동하게 된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부수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반드시 행복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이것이 행복’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지 말고, 최소한의 부정적인 상태가 아닌 모든 것을 행복으로 설정해놓아야 보다 자주, 보다 쉽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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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진정한 효도

중국에서 유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경전 ‘부모은중경’은 어버이의 은혜를 찬탄하고 이에 보답하기를 독려하는 경전이다. 이 경전에는 ‘어머니의 열 가지 은혜’가 제시되어 있는데, 갓난아기를 살피는 어머니의 정성과 노력 그리고 평생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학습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태어난 후 1~2년간은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타인의 절대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상정된다. 이렇게 절대적인 보살핌을 쏟아준 부모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부파불교인 설일체유부의 율장(비나야약사)에 따르면 몸과 재력으로 효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모가 깨달음을 증득하여 영원한 행복을 얻기를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고 말한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나 자신에게도 통용되는 원칙으로, 삼보를 믿도록 하고 계행을 지키고 보시를 잘 하고 지혜를 갖추도록 스스로를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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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무엇일까? 자기 성찰이다. 알아차림이다.
법구경 33, 34, 35번 게송을 통해 마음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보자. 마음은 본디 흔들리고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잘 다스리겠다고, 중생심에서 벗어나 해탈로 가는 수행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몸부림치고 반항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수행하지 않은 마음이 바로 중생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믿지 말고 항상 다스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음을 다스릴 때에는 누군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방일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길들이면 길들여진 마음이 행복을 가져온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즉 자기 성찰은 비단 불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나랏일을 하는 정치인들과 위정자들 역시 다른 어떤 것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성찰할 줄 알아야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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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

믿음의 바탕

뮤지컬 ‘싯다르타’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기 직전의 싯다르타가 “죽음을 불사한 수행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기나 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자기 수행에 대한 확신, 수행을 하면 정각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인생의 불확실성이 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부처가 신이 아닌 불교에서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서 믿음이 나온다. 우리의 삶이 고통이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그것이 바로 초발심이고 수행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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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

불자들의 소원

공원에 가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중생들에게 행복이란 지금보다 조금 덜 행복한 삶, 지금보다 조금 덜 괴로운 삶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사회적, 물질적 의미의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다. 다만 불교에서는 ‘걱정할 시간에 공을 들이라.’고 제안한다.
공을 들이는 목적은 결코 현재 여기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있지 않다. 공을 들이는 것은 삶 너머에 있는 궁극적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현대인들은 매우 축소된 종교의 역할 속에서 단지 힐링, 명상, 쉼 같은 것을 원하지만 불교가 추구하는 행복, 불자가 추구해야 할 행복은 궁극적 행복이다.
궁극적인 행복인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을 세워야 한다. 매일 아침 행선축원을 읽는 것부터 궁극의 행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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