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심과 보살심

전 같지 않은 장마. 불어난 계곡물을 보며 생각하는 기후위기와 보살심의 상관관계.
‘쌍윳따 니까야’ 말리까 경에서 부처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보다 더 넓게 더 조밀하게 얽히고설킨 현대서회에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사랑하는 소극적인 자세로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반드시 보살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1 마음가짐이다.

공감하는 마음

새해를 맞이하며 전하는 덕담.
인간은 이기적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마음이 솟아난다. 그런가하면 잘 모르는 상황에는 오해와 편견에서 이기적인 생각이 피어오르는 때도 있다.
그러나 오해가 걷히고 오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면, 미안함에서 다시 공감의 마음이 생겨나고는 한다. 사소한 계기일지라도 배려심과 자비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끔은 나를 위한 기도, 내 가족을 위한 기도가 아닌 남을 위하는 기도, 모두를 위한 기도를 하도록 하자.

공동체주의, 개인주의

공동체주의는 좋은 것인가?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주의는 회복해야 할 정신적인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견 공동체는 ‘폐쇄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집단주의로 변질될 소지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불교의 자비는 뜨거운 사랑이라기보다 차가운 배려에 가깝다. 나라는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이 중요한 만큼 타인 역시 한 사람의 주체적 개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주창하는 공동체정신이 개인의 주체성을 말살시키지는 않는지, 개개인의 경험에 빗대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비에 대하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증심사 목요봉사팀은 매주 목요일 자비를 행하고 있다. 자비심이란 무엇일까?
자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서양 학자들은 사랑을 에로스, 필리아, 노도스, 프라그마, 아가페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불교의 자비도 사랑의 하나이다.
이처럼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연애감정’만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라”고 하는 부처님의 <자비경>을 구절구절 살펴보며 불교의 사랑과 자비를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