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왕삼매론 해설 3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며,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내가 이롭고자 하지 않음, 즉 이타심을 장애로 알면 의리가 상하게 되는 마음의 장애를 만난다. 내가 이롭고자 함 없이 그냥 함께 있는 것, 그냥 내어주는 것이 자연이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도 내가 이롭고자함 없이 그저 인연에 의지하여야 한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고 내가 남에게 순종하는 것을 장애로 여겨 이를 피한다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는 더 큰 장애를 만나게 된다. 내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 되레 내가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무심하고 주고받는 깨달은 이의 처세를 행할 수 있다.

보왕삼매론 해설 2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고, 수행하는 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없고 마가 없으면 마음공부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지 않은 것이며, 배움의 등급을 뛰어넘어, 깨닫지 못했는데도 깨달았다고 말하는 불망어죄를 저지르게 된다.
마음공부에 장애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참선을 할 때 망상에 빠지고 포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음은 찰나 생 찰나 멸한다.
장애라고 생각되는 마음도, 마장이라고 생각되는 현상도 생하고 멸할 것을 알아야 한다. 지레 이를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진정한 장애가 된다.

보왕삼매론 해설 1

보왕삼매론은 원나라 말기 묘협스님의 저서 ‘보왕삼매염불직지’ 중 제17장 10대 애행만을 따로 떼어서 다시 한 번 축약한 경전이다. 열 가지 장애를 수행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장애도 생길 때부터 ‘누군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본분으로 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인 상태를 누군가가 장애로 느낄 뿐이다. 장애라는 생각에서 장애가 되는 것이다.
중생들은 내가 있다는 생각과 이것이 나라는 생각에 속박되어 있다. 나라는 무명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살피면 자연 아닌 것이 없고 장애인 것도 없다.
때문에 몸에 병이 있는 것도 장애가 아니며, 병의 인연을 살펴 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면 병이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자경문 해설 9

사랑과 정의 본질은 같다. 그 본질은 모두 애착이고 집착이다. 누군가 정스럽게 행동한다면 그 이유는 친밀감과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애착이 생기니까 상대방에게 친밀하고 다정하게, 정스럽게 대하는 것이다.
수행자란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인정에 끌리고 이성을 흠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는 머리를 깎아도 수행자가 아니고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라 할 것이다.
정은 일견 자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인정을 자비심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인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집착이며, 집착을 이용해서 우리 안에 키우는 이기심이다.

자경문 해설 7

식욕, 수면욕, 성욕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나 잘났다는 생각, 뽐내는 모습의 뿌리도 생존 욕망에 있다. 생존 욕망에 충실하여 본능적으로 살면 남을 업신여기고 내가 잘났다고 으스대게 된다. 아상에는 인정욕구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원시의 생존 양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아상을 키우는 삶을 살면 죽은 후에 삼악도에 떨어질 확률이 커진다. 도가 높을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은 너와 나의 분별에 따른 아상이다.
언제나 마음을 겸손히 할 때 만복이 저절로 들어오며, 항상 자기 자신을 성찰할 때 아상에 빠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자경문 해설 3

부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무명에 빠져 사는 것은 말세의 특징이 아니라 중생들의 원래 살아가는 모습이다. 중생들은 연기법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인연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인과업보의 도리를 알지 못하기에 몸뚱아리가 ‘나’라고 철석같이 는다. 이러한 무명에서 교만이 싹트고, 이러한 무명에서 전도몽상의 삶을 살아간다.
깨닫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기에 오직 수행하고 금생에 마음을 밝히는 것으로 은덕을 쌓아야 한다.

참선곡 해설 4

참선곡 네 번째 파트는 경허스님이 다시금 전하는 당부로 이어진다. 경허스님은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참선곡 전체를 통하여 말하고 있다.
죽을 때의 고통은 사지가 쪼개지고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말이다.
이렇게 극심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참선을 하는 것이다. 참선을 해서 깨치는 것이다. 참선을 열심히 하면 나고 죽는 데에 얽매이지 않으며 살 때에도 번뇌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부단하고 꾸준한 정진이 있어야 한다.

참선곡 해설 3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지식을 찾아가 인가를 받은 후에는 인연 따라 자유롭고 너그럽게 지내되 인연이 맞는 중생을 맞나면 그 중생의 근기에 맞게 제도해야 한다. 깨달으면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내게 된다.
한편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거품 같고 허공과 같다는 것을 알고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자극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관찰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온갖 것들을 작동시키는 전기와 같음을 명심해야 한다.

참선곡 해설 2

경허스님이 참선곡을 통해서 말하는 수행의 핵심은 나를 의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하고 듣고 웃고 울고 밥 먹고 옷 입는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지만 죽고 나서 움직일 수 없는 시체는 ‘나’가 아니며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도무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기에 내가 아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의심해야 한다.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듣는 놈이 무엇인지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그렇게 탐구하다보면 한 생각이 만년 동안 이어지게 되며, 그렇게 탐구한 끝에 본래 내가 부처였음을 깨달으면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

영가전에 6

중생은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여섯 가지 세계를 오가며 육도윤회한다. 번뇌라는 이름의 미혹한 마음을 털어버리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뛰어넘어 극락으로 갈 수 있다.
그렇다면 가는 우리는 누구인가? ‘영가전에’에서는 물과 얼음을 예로 들어 우리의 삶을 설명한다.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은 인간이 육신을 갖고 태어나는 것과 같고, 인연이 다해 얼음이 녹아 사라지는 것은 육신이 죽는 것과 같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이치에 왜 인간은 분노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가? 그런 마음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