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기 같은 외로움 (feat. 법정스님)

외로움과 고독은 우리의 오랜 친구와 같다. 외로움은 나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손아귀를 벗어났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자 빈자리이다. 소속감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감이다.
법정스님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하며, 이를 통해 자기 정화를 할 수 있다”고 썼다. 외로움은 눈에도 귀에도 입에도 코에도 있다. 이러한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그 감정의 원천이 소유욕과 갈애라는 것을 깨닿고, 이것을 털어내는 연습일 해야만 진정한 홀로 있음, 고독을 누릴 수 있다.

불교가 바라보는 부부의 관계

불교에서는 부부를 도반의 관계로 본다. 함께 수행하고 서로 존중해야 할 가장 가까운 선우로 여긴다.
흔히 우리는 ‘선지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스승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선지식의 본 뜻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친구인 ‘선우’이다. 경전에서는 도반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하여 나에게 유익한 일이며, 자애로운 행위를 일으키며, 나의 마음을 버리고 당신의 마음을 따르려는 한마음이 생긴다고 표현했다.
부부관계에서도 ‘성격차이’로 포장한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선지식과 도반으로 여기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가족의 의미 3

가족 속 형제자매의 관계를 조명한다. 2021년 11월, 고인의 형제 자매에게 돌아가는 상속 유류분 권리 조항 삭제가 예고됐다. 대가족적 관념이 남아있던 과거와 달리 핵가족마저 깨져 1인 가구가 주류가 된 사회상이 법적인 측면에도 반영된 사건이라 하겠다.
가족관계의 핵심은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등 수직적인 관계에 있다. 형제 자매는 수평적인 관계로 부모를 통한 간접적인 혈연이기 때문에 늘 갈등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형제 자매간의 관계에서 갈등을 줄이는 방법은 가족, 식구라는 특별한 관계성보다 일반론적 인간관계에 의거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관계성 때문에 각별한 집착이나 소유욕, 지배욕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지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갈등 상황이 나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상대방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내 감정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타인에게 교정을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의미 2

가족을 위해 하는 기도의 공덕은 오롯이 가족에게 갈까? 불교에서는 가족을 어떻게 해석할까?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일화를 통해 부부관계나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정립해주었다. 부부는 도반의 관계다. 함께 수행하며 서로의 수행을 독려하는 관계다.
부모자식간에 부모는 자식에게 스승이 되어주어야 한다. 자식이 선업을 쌓을 수 있게, 악업을 멀리할 수 있게 가르쳐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가족은 인생이라는 여관방에서 어쩌다 같이 묵은 것일 뿐, 애착하거나 집착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그네가 아침에 일어나면 이내 흩어지는 것과 같이 미혹하여 얽매여서는 안 된다.

가족의 의미 1

우리는 나를 기준으로 부모와 자식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혹은 식구는 흔히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1인 가구가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같이 살지 않는 가족에 대해 ‘우리 가족’ ‘우리 식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어떤 사람들은 실제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간다. 가족은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에 너무 빠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부처님은 대중처소에서 살지 않고 혼자 수행하는 수행자에게 혼자 사는 미덕에 대해 말씀하셨다. 혼자 사는 사람은 소유와 집착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조차 소유하려고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소유하려고 한다. 이런 소유에 대한 탐욕과 갈애를 버릴 때 오롯이 혼자 살아갈 수 있다.

올바로 듣기 올바로 말하기

말하기와 듣기는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잘 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올바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의 액면 그대로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말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화자의 생각과 의도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들어야 제대로 듣는 것이다.
올바로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말은 화의 문이라 한 구산스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도 그렇다. 잘 말하는 것은 해야 할 말은 하고 안 해야 할 말은 안 하는 것이다. 잘 말하는 것은 지혜와 용기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다.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듣는 것만 해도 어느 정도 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나 혼자 산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최초의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 유명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결국 ‘혼자서 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현대사회에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사자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것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상황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스스로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람은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다. 바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얽매이지 않고 붙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착과 애착을 덜어내자.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역시 집착과 애착에서 자유롭게 때문에 홀로 청정할 수 있다.
이렇게 두려움과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진정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존재이다.

나무처럼 살자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젊을 때는 내 앞에만 길이 막혀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생을 ‘나무’에 비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다소 고달픈 젊은 시절은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다. 뿌린 씨앗 중 어떤 것이 싹을 틔울 지는 모르지만 그중 하나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으면 주변의 동물과 곤충, 그리고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씨앗의 싹을 틔우는 것은 숱한 인연이다. 나의 의지와 우연이 만나 인연을 맺고 숙명이 된다. 내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앞서거나 뒷서가는 길에서 벗어나 나무처럼 살자. 나

진정한 용기

광주항쟁, 최후의 11인인 김동수 열사 추모재에 즈음하여 생각하는 진정한 용기.
진정한 용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보살의 용기와 중생의 용기다.
보살의 용기는 자비심에서 비ㄹㅅ된다. 모든 중생이 다 부처라는 마음에서 자비심이 나오며, 공과 지혜에 대한 통찰에서 자비가 나온다.
중생으로서의 용기는 마음의 무게와 반비례한다. 마음의 애착과 욕심을 버릴 때 용기 있는 행동이 나온다.
늘 마음의 때를 털어내는 일상을 보낼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안의 수행이 되어 보살심으로 깃들 것이다.

올바른 정치인의 자격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즈음하여 불교적으로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인의 자격.
정치인을 판단하는 두 가지 중요한 덕목은 정직과 헌신이다. 정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양설을 하거나 기만하는 말도 거짓말의 일종이다.
헌신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비심이 넘친다는 것은 도둑질 하지 않는 것이며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직과 헌신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열 가지 계율의 현대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정직과 헌신은 불자들의 삶의 자세이자 공직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를 가질 때에만 올바른 정치인의 자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올바른 정치인을 가려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