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주의, 개인주의

공동체주의는 좋은 것인가?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주의는 회복해야 할 정신적인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견 공동체는 ‘폐쇄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집단주의로 변질될 소지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불교의 자비는 뜨거운 사랑이라기보다 차가운 배려에 가깝다. 나라는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이 중요한 만큼 타인 역시 한 사람의 주체적 개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주창하는 공동체정신이 개인의 주체성을 말살시키지는 않는지, 개개인의 경험에 빗대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차라리 혼자가 나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족 형태는 1인 가구이다. 학생, 취업한 청년, 주말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1인 가구가 존재하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은 55세 이상의 ‘황혼 이혼’ 가구이다.
오랜 세월 살아온 부부가 결별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왜 나의 배우자가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은 그 사람에게 덧칠한 나의 감정 때문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에게 나의 감정을 덧칠한다. 내 감정으로 덧칠하기 전 원래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졌을까? 오랫동안 덧칠한 감정을 걷어내고 볼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관용

2019년 8월, 일본 ‘표현의 부자유전’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헤프닝과 영화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으로 돌아보는 우리 사회의 관용 정신.
관용은 존중이다. 나와 당신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본 우익들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사태와 일부 타종교인들의 ‘나랏말싸미’ 배급 중단 요청 등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기에 발생한 일이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
관용의 정신이 바로서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이 다른 타인과 토론을 통해 자기 주장을 정당하게 펼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해본적 없엇 낯설고, 마음 편한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본의 경제 침탈, 그 본질과 대응

2019년 8월, 일본의 아베 정권은 한국과의 경제적 협업을 반려하겠다는 의미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를 공표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본의 경제 도발에 대응하고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도 소련을 견제해야만 하는 미국의 묵인 아래 일본의 국가주의, 제국주의는 청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쟁을 일으킨 각료들이 여전히 일본의 정치를 주름잡고 있다.
아시아를 제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과거의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일본 극우세력의 득세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또 국민은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가?

불교는 종교인가?

불교는 기독교, 이슬람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로 꼽힌다. 과연 불교는 종교인가? 종교의 3대 요소는 교주, 교리, 교단이며 불교 역시 부처님이라는 교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교리, 부처님의 제자들의 집단인 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불교의 본질은 스스로 체험하고 깨닫은 수행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서구에서 정의하는 종교에 부합하다기보다는 종교라는 외피, 즉 옷을 입고 있는 것에 다름 없다.
수행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행을 닦아 마음을 바꾸는 것이며, 우리가 다니는 절은 바로 ‘우리도 부처가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수행하는 수행 공동체이다.

우리시대의 영웅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 국가가 방치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는 오로지 국가의 책임 방기 때문인가?
‘나는 힘이 없고 선량한 시민일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개인들은 힘이 막강하면서도 이타적인 영웅을 원한다.
영화의 주인공 같은 영웅도, 경전 속 불보살도 없는 현실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공동체의 회복이다. 자율적인 소규모 마을공동체의 복원만이 책임 있는 개인을 만들고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