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 해설 1. 천수경의 구성

천수경은 예불을 하는 불자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경이자 자주 접하는 경이다. 천수경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이기에 이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 하는 진언을 중심으로 앞 부분에서는 귀의하고 뒷부분에서는 참회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는 귀의하고 서원하는 종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 기대겠다는 다짐 없이는 진정으로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죄의 자성없음을 무아이며 무상임을 깨닫지 않고는 진정으로 부처님의 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축원문, 제대로 알고 있나요?

예불이나 불공 등의 의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축원문이다. 축원문은 1) 삼보에 귀의하고 2) 발원자가 누구인지를 고하고 3) 축원의 내용을 말하고 4) 서원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귀의는 부처님이 깨달은 바 ‘무상’을 깨닫기 위하여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다짐이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곧 수행하는 일이며, 그 수행의 공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해달라는 것이 개인축원이다.
축원문은 삼귀의로 시작하여 사홍서원으로 마치는 불자들의 수행 과정과 같으며, 모든 축원에는 귀의와 수행이 전제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기도의 공덕과 가피

우리가 기도를 할 때는 가피와 공덕이 함께 한다. 가피는 보살님들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함을 말한다. 중생들에게 이로움이란 나와 내 나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지만, 불보살님들이 보기에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번뇌를 뿌리 뽑고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불보살님이 우리에게 가피를 내린다면, 우리는 그러한 가피력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준비를 하여야 한다. 준비란 스스로 공덕을 쌓는 것이다. 늙고 병들고 약한 사람도 공덕을 지을 수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재산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7가지 공덕을 당신의 삶에서 행하여 공덕을 쌓기를 바란다.

자경문 해설 10

자경문 해설의 마지막 편.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며 대중을 향한 마음을 늘 평등하게 하라는 9~10번째 구절을 설명한다.
앞서 해설해온 자경문의 10가지 경책의 말씀은 결국 본능을 다스리라는 것과 집착을 버리라는 것, 두 가지 이야기로 귀결된다. 사람 몸 받기 어려운 육도윤회의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 부단히 수행하라는 당부이다.
우리는 부처의 경지라는 것도, 도라는 것도 언젠가 다다라야 할 미래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나와 내 밖에 무언가 있다는 생각, 주체와 객체로 모든 것을 분멸하는 것이 중생의 자연스러운 습이다.
그러나 세상의 성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내 밖에 무언가에 한눈팔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 대한 원칙을 바탕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그 순간이 부처의 삶이자 도에 이르는 길이다.

자경문 해설 9

사랑과 정의 본질은 같다. 그 본질은 모두 애착이고 집착이다. 누군가 정스럽게 행동한다면 그 이유는 친밀감과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애착이 생기니까 상대방에게 친밀하고 다정하게, 정스럽게 대하는 것이다.
수행자란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인정에 끌리고 이성을 흠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는 머리를 깎아도 수행자가 아니고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라 할 것이다.
정은 일견 자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인정을 자비심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인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집착이며, 집착을 이용해서 우리 안에 키우는 이기심이다.

자경문 해설 8

여색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은 흔히 3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서로에게 눈이 맞아 이끌리는 성욕의 상태이다. 두 번째는 자기만의 영역에 상대방이 들어와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낌이 없는 친밀함의 단계이다. 세 번째는 애착, 곧 집착의 단계이다.
자경문에서는 사람에 대한 소유욕, 애착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재물과 여색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방법이 바로 팔정도 가운데 하나인 정념이다. 비록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마음가짐, 초지일관의 마음가짐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재물과 여색을 다스리는 길이다.

자경문 해설 7

식욕, 수면욕, 성욕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나 잘났다는 생각, 뽐내는 모습의 뿌리도 생존 욕망에 있다. 생존 욕망에 충실하여 본능적으로 살면 남을 업신여기고 내가 잘났다고 으스대게 된다. 아상에는 인정욕구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원시의 생존 양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아상을 키우는 삶을 살면 죽은 후에 삼악도에 떨어질 확률이 커진다. 도가 높을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은 너와 나의 분별에 따른 아상이다.
언제나 마음을 겸손히 할 때 만복이 저절로 들어오며, 항상 자기 자신을 성찰할 때 아상에 빠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자경문 해설 6

사바세계 중생들을 움직이는 힘은 욕망이다. 욕망에서 모든 행이 비롯된다. 욕망은 나쁜 것일까? 그릇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욕망에 반하는 고행 수행의 극단까지 체험했으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욕망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도, 욕망에 충실하는 것도 아니다. 중도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매순간 깨어있어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
자경문에서는 본능적인 욕망을 다스리고 행동가지 하나하나를 성찰하는 지혜를 갖추기를 독려한다.

자경문 해설 5

불교에서는 선우(善友)를 사귀고 악우(惡友)를 멀리하라고 말한다. 좋은 도반이 없거든 차라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수행하라는 구절도 있다. 요즘은 처세술의 일환으로 이러한 말을 ‘손절’이나 ‘관계 끊기’의 근거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기실 이 말의 전제는 스스로가 충실한 수행자라는 데에 있다.
스스로를 수행자로 규정지어도 여러 현실의 여건상 타인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짓고 부러 가까이 하거나 부러 멀리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선우나 악인으로 분별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충실한 수행자인지를 살펴보고, 누군가를 분별하는 데에 나의 욕심이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가려보아야 한다. 좋은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수행에 전념하기 위함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경문 해설 4

삼악도 고통의 근본은 탐욕에 있다. 재물에 인색하지 말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내 안의 탐심을 없애는 데에 제일 가는 수행은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몸으로 봉사하거나, 재물로 보시하거나, 마음으로 뭇 중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모두가 훌륭한 보시의 방법이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고 말하지만, 기실 우리는 사는 동안 쌓아온 업의 과보를 지니고 떠난다. 보시하고, 수행하고, 말을 떠나 홀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 쌓을 수 있는 선업이자 공덕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