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심과 보살심

전 같지 않은 장마. 불어난 계곡물을 보며 생각하는 기후위기와 보살심의 상관관계.
‘쌍윳따 니까야’ 말리까 경에서 부처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보다 더 넓게 더 조밀하게 얽히고설킨 현대서회에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사랑하는 소극적인 자세로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반드시 보살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1 마음가짐이다.

믿음의 4대 요소

‘종교’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믿음은 욕망, 욕망의 대상, 기존의 믿음, 실행능력 등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행동하게 하는 욕망이 있고,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을 알아야 한다. 이어서 욕망의 대상에 대한 기존의 검증된 믿음에 기대어만이 안정적인 믿음으로 거듭나며, 욕망에 대한 믿음을 실행할 능력이 ‘믿음’의 마지막 요소가 된다.
이밖에도 믿음의 네 가지 오류를 살펴보며 신행생활의 바탕이 되는 믿음이라는 것, 그리고 내 안의 믿음을 점검한다.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분인가?

관세음보살은 우리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보살이자 일반 신도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 중생들의 고통을 살피고 어려움을 들어주는 분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이지만, 대승불교에 와서 일반 대중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신’적인 존재로 관세음보살을 상정한 것이다.
이처럼 중생들에게 신적인 믿음을 갖게 한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에, 서방정토 아미타세계의 제2인자로, 아미타부처님의 사바세계에서 대신 실현해주는 분이기도 하다.
또한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가 종교의 외피를 입으면서 이웃종교, 또는 전파된 나라의 토착문화를 흡수한 결과 천수천안, 백의관음 등 다양한 형태로 화현했다.

믿음은 깨달음의 근본

돌로 만든 조각상일 뿐인 석조입상을 보고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돌조각을 부처님으로 보게 하는가? 믿는 마음 때문이이다. 내 마음의 믿는 마음, 신심이 평범한 돌덩어리를 관세음보살로 탈바꿈시킨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다. 믿음은 수행을 시작하게 하는 것,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공덕의 어머니이다. 믿음은 수행의 바탕으로, 수행하는 마음 자세로 보시를 행하면 그 공덕이 오롯이 선업으로 쌓이게 된다.
우리는 중생의 마음으로 살지 않되 보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돌덩어리를 보살로 마주하게 하는, 내 안의 보살의 마음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자.

입춘대길 건양다경

새해가 오고 입춘을 맞이하며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문구를 대문에 붙인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기를 바라며, 양의 기운이 일어서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봄이 오나 겨울이 오나 바라는 바 없이 그저 ‘스스로 스러한’ 자연일 뿐인데, 왜 인간은 소원하는 바가 있고 목적이 있는 걸까?
마음으로 무언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경사스럽기만을 바라나 자연은 그럴 수 없다. 꽃 피우는 진달래와 개나리, 그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평상심이 도’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다.

마음이 부처다

부처님의 제자답게 항상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의미에서 살펴보는
관음시식 장엄염불의 게송.
나옹스님은 아미타불을 찾는 동생에게 “마음머리에 꼭 붙들어 간절하게 잊지 않으면 육문에서 상서로운 자금광을 발할 것”이라는 게송을 주었다.
아무런 잡생각 없이 아미타부처님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마음만 있을 때, 그 순간이 바로 중생이 부처가 되는 순간이다. 부처님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의 경지이다.

삶의 불교적 성찰

상윳다니까야 <뱀의 독> 이야기와 백유경 <거울 속의 한 사람> 이야기로 알아보는 삶에 대한 성찰.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것은 지수화풍이 사대가 인연 따라 모인 것일 뿐 본질은 공한 것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라는 아공, 모든 존재는 공하다는 법공을 올바로 알고 성찰하는 것이 불교적으로 인생을 성찰하는 것이며, 인생을 올바로 보는 것이다.

종교는 문화다 (미얀마 성지순례)

불교가 국교인 미얀마에서는 출퇴근길에 자연스럽게 법당을 참배하고, 생일이나 기념일 등 삶의 순간에는 어김 없이 불교와 함께 한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특별한 종교의식이나 신앙활동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문화에 가깝다.
종교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사회의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근현대 역사의 질곡을 겪으며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여 기존에 우리 삶에 내재되어 있던 도덕과 윤리 같은 덕목이 희미해져버렸다.
불자인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일상의 문화가 되도록, 내 삶에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자비에 대하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증심사 목요봉사팀은 매주 목요일 자비를 행하고 있다. 자비심이란 무엇일까?
자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서양 학자들은 사랑을 에로스, 필리아, 노도스, 프라그마, 아가페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불교의 자비도 사랑의 하나이다.
이처럼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연애감정’만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라”고 하는 부처님의 <자비경>을 구절구절 살펴보며 불교의 사랑과 자비를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운명을 믿습니까?

사람들은 왜 운명을 믿는가?
만일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를 바꾸는 어떤 노력도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연’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세계라면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신조차 미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불교의 인연설은 어떠한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연설을 숙명론이나 운명론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부처님이 설하신 인연설은 인연의 고리가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여 미처 우리가 상관관계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누군가 대신 말해주길 바라지 말고, 자신의 욕망을 의지와 비전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